여야가 다시금 강대강 대치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는 본래 민의를 수렴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가적 과제를 풀어가는 장이어야 하지만, 지금의 국회 풍경은 정반대다. 법안 처리는 지연되고, 민생은 외면된 채 정쟁만이 소용돌이친다. 여야 모두 상대를 향해 고성을 높이며 정치적 공세에 열중하고 있으나, 정작 국민의 눈에는 무책임한 힘겨루기로만 비칠 뿐이다. 이 같은 대치가 반복되는 근본적 이유는 정치권이 타협과 협치를 민주주의의 본질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 사회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회에서는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행태가 고착화되고 있다. 상대를 굴복시켜야만 승리라고 여기는 제로섬 정치가 판을 치니, 정책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는다. 여야는 9월 정기 국회를 앞두고 각각 워크샾과 연찬회를 통하여 전열을 정비하고는 있지만, 올 후반기 국회가 순항하게 될지는 낙관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정파적 이해보다 민생을 먼저 챙기라는 것이다. 고물가, 고금리, 경기침체 등 경제 현안은 산적해 있고, 청년 일자리와 주거 문제, 고령화 사회 대책
국회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위임받아 국가 운영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 달리 국회는 종종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힘을 과시하고, 소수 정당은 이에 맞서 극단적 대립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반복되어 왔다. 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거나 국정 현안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는 국민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정치 불신을 깊게 만든다.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협치 실종’의 정치 문화에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다수결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의사결정 절차일 뿐,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이 빠질 때 다수결은 단순한 힘의 논리로 전락한다. 국회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다수의 힘을 자제하고 소수와 함께 협력하는 정치적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는 국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당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전쟁터로 전락할 뿐이다. 국민은 다수의 힘 과시보다 정책 협력과 합리적 타협을 원한다. 이는 결코 소수의 발목잡기식 정치를 용인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 있는 다수와 건전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미·일 정상들과 마주 앉는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며, 일본의 안보 정책이 변화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열리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의례적 만남을 넘어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안보 의제가 핵심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북한은 최근 수차례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은 한·미 동맹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일본과의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반도 및 동북아 전체의 안보 지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일 공조가 강화될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안보 신뢰를 확보하되,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적 채널을 유지함으로써 긴장 완화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경제 협력 또한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에너지 전환 등 첨단 산업 분야는 세 나라 모두의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다. 미국은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이 시작되자, 후보들은 연일 구호와 세 결집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놀음이 아니라, 보수를 살리고 나라를 살릴 혁신의 비전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지리멸렬한 내홍과 무기력으로 국민에게 실망만을 안겨주고 있음을 후보들은 직시해야 한다. 당의 정체성은 이미 희미해졌다. 자유·시장경제·안보·공정이라는 보수의 기본 가치조차 선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민주당에 대한 반대만 외치는 구태의연한 프레임에 기대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얄팍한 정치만 남았다. 국민은 더 이상 이런 낡은 레코드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대 확장 역시 절박하다. 2030세대가 등을 돌린 정당이 어떻게 미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청년들은 진정성 없는 말잔치와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속지 않는다.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당은 결국 늙어버린 조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민생은 뒷전이고 당내 권력 구조만 따지는 정치 역시 이제는 끝내야 한다. 경제 불안, 집값, 일자리, 교육 문제 등 국민의 삶을 파고드는 절실한 과제들에 대해 단 하나라도 실질적 해법을 제시한 후보가 있는가. 당권 경쟁은 치열하지만, 민생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35년의 식민 굴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날은 하늘이 준 은혜가 아니었다.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투쟁, 옥중에서도 꺾이지 않은 신념, 생을 다 바친 무명의 희생이 만든 날이었다. 독립유공자로 공식 등록된 이만 2만7천여 명,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피가 태극기에 스며 있다. 광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반도는 미·소 양군의 분할 점령 속에 갈라졌고, 불과 5년 뒤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다. 자주와 자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과제였다. 빛을 되찾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8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내부를 돌아보면 부끄럽다. 자유는 때로 방종으로, 민주주의는 진영의 무기로 변질됐다. 국회는 민생보다 정쟁을 앞세우고, 사회는 진실보다 진영의 논리에 휩쓸린다. 광복의 가치는 피 흘린 선열의 무게만큼 무겁다. 그 무게 앞에 지금의 정치권과 국민은 당당한가. 광복 80주년은 한일관계
국민의힘이 또다시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국민이 느끼는 것은 기대가 아니라 피로다. 매번 변화를 말하지만 바뀌는 건 얼굴 몇 명뿐, 그 뒤의 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보수의 간판을 걸고 집권을 꿈꾸려면, 먼저 기득권 보호막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힘’은 ‘국민 빼고 다 힘내는 당’이라는 냉소만 키울 뿐이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였다.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의 행보는 원칙보다는 반사이익 정치에 기대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진보 진영을 반대하는 데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민생과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청년 일자리, 고령층 복지, 중소기업 지원, 농어촌 활성화 같은 의제는 선거철에만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이후에는 정치 구호 속에서만 명맥을 유지했다. 이쯤 되면 보수의 무게감이 아니라 무기력이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당 대표 선거가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의 면면은 혁신의 기수라기보다 자리싸움의 베테랑처럼 보인다. 경륜을 내세운 후보는 과거의 정치 방식을 현재에 이식하려 하고, 청년을 내세운 후보는 겉만 젊을 뿐 속은 기성 정치의 복사판이다. 통합을 외치는 후보는 정작 자기 진영만의 통합
더불어민주당이 8월 2일 정청래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권리당원과 국민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 지지가 이 결과를 만들었다. 이제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집권 2년 차, 당·정·청 관계를 새롭게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청래 대표는 당선 직후부터 검찰·언론·사법 개혁을 추석 전까지 완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밀어붙이겠다는 강한 어조도 숨기지 않았다. 추진력은 필요하지만, 여당 대표의 언어는 야당식 투쟁과는 달라야 한다. 국민이 여당에 기대하는 것은 대립이 아니라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이다. 정 대표는 “싸움은 내가, 대통령은 일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싸움은 단순한 정치적 투쟁이어서는 안 된다. 여당의 힘은 타협과 설득, 그리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서 나온다. 집권 세력의 리더십이 계속 ‘대결 구도’에 머문다면 국민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대 다수의 국민들은 전투적 역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주인으로 받들겠다는 진정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므로 협치를 통한 탁월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정청래 체제는 민주당의 색깔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명한 당 운영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 다수당이자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힘이 과연 보수 가치를 지키는 정당인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드러난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자칭 보수의 명맥을 잇는다고 말하지만, 당내 언어는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고, 당의 전략은 유튜브식 선동과 충성 경쟁에 갇혀 있다. 무엇이 진짜 보수이고, 누가 시대의 리더십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 국민은 묻고 있고, 이 정당은 답하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 선거를 둘러싼 구도는 ‘쇄신이냐 퇴행이냐’의 기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일부 후보는 극단적인 언어와 구시대적 사고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으며, 당내 갈등은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를 내부 공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품격과 책임, 절제라는 보수의 핵심 덕목은 철저히 무시된 채, 오로지 진영의 충성도와 선명성만이 강조된다. 이런 정당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이끌고, 국민의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말인가. 특히 당내에 퍼지는 일부 극단주의 흐름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자극적 인물을 적극 받아들이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은 심각하다. 국민이 원하는 건 단순한 문호 개방이 아니다. 상식과 품위, 미래를 보는 통찰을 갖춘 정당이다. 자극적 목소리를 키우며 표를 얻겠다는 전략은 순간의 인기만을 노린 정치 도박
2024년 총선 이후 보수 정치의 위기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수의 궤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단순히 의석 수의 감소나 당 지지율 하락을 넘어, 국민의 마음속에서 보수라는 이름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다. 보수는 원래 질서를 중시하고, 안보와 시장, 전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치적 안정과 효율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그 정체성을 지키는 데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영 논리로 뭉친 내부 권력 다툼, 혁신 없는 인물 공천, 미래세대와의 단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경직된 언어가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보수 정치가 궤멸로 향하는 조짐은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되었다.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 사이, 보수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보다 상대의 실책에 기댄 생존 전략에 머물렀다. 명확한 국가 비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정책 의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보수는 스스로의 틀 안에 갇혀 변화를 거부했다. 정치는 끊임없이 국민과 재계약하는 작업이다
국가는 법과 제도 위에 존재하지만, 그 법과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가 공정하고 건강해야 한다. 정치가 무너진 국가에서는 행정도, 사법도, 경제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사회는 정치의 기능 부전으로 인한 심각한 시스템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권력이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국민 모두의 공동 통치에 의해 운영되어야 함을 뜻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 제86조 제1항을 근거로 장관을 임명할 권한을 갖지만, 이 권한은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적 신뢰 위에 서야 한다.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거나, 정치적 견제 장치를 무시하는 것은 헌법이 전제하는 권력분립 정신에 정면으로 반한다. 정치의 실패는 단순한 권력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행정의 독주로 이어지고, 법치의 붕괴를 초래한다. 입법 기능이 마비되면 행정 권력은 편법과 시행령 통치로 흐르게 된다. 실제로 최근 국회의 파행으로 인해 민생 법안은 장기간 표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