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국정감사가 또다시 시작됐다. 매년 가을이면 반복되는 이 정치행사는 헌법이 보장한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자, 삼권분립의 근간 위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해마다 국감장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국정 감사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여야 간 공방과 정치적 폭로가 난무하는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은 국가 운영의 문제를 따지는 ‘감시의 장’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치 난타전’의 무대가 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정책 질의보다는 정치적 공세가 더 눈에 띈다. 여당은 정권의 방패를 들고, 야당은 공격의 창을 세운다. 증인 채택을 둘러싼 감정 싸움, 언론을 의식한 발언 경쟁, 그리고 SNS용 ‘한방 발언’이 넘쳐난다. 정작 국민의 삶과 관련된 주요 현안, 예컨대 고물가·청년실업·지역 소멸 같은 주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국정의 핵심을 논의해야 할 ‘감사’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될 때, 국회는 스스로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셈이다.
삼권분립의 원리는 단순히 권력의 나눔이 아니라, 권력의 균형을 통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입법부는 감시자로서 행정부의 오남용을 견제하지만, 그 권한은 ‘공익’을 위한 것이지 ‘정치 보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국감은 견제와 균형 대신 ‘정치적 대립 구도’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행정부를 향한 합리적 질문이 ‘정치 심문’으로 오해받고,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건설적 비판이 정권 공격으로 치부된다면, 삼권분립의 건강한 순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우리는 삼권분립의 근본 의미를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몽테스키외'가 말한 삼권분립은 “권력이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권력은 권력을 제어하기보다 서로를 공격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감시가 통제를 넘어 ‘보복의 언어’로 흐를 때, 입법부의 도덕적 권위도 사라진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비판이 사실보다 정치적 계산에 근거할 때 국정감사는 신뢰를 잃는다.
국감이 본래의 목적을 되찾기 위해선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정당의 이해보다 국민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감사의 초점은 정권이 아니라 정책의 결과에 맞춰져야 한다. 둘째, 질문보다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폭로보다 문제 해결책을 제시할 때, 국감은 비로소 생산적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언론과 국민 역시 정치적 흥미 위주의 ‘국감 스타 만들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쟁이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국감을 평가하는 사회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결국 삼권분립의 의미는 ‘서로 다투기 위한 권력의 분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권력의 견제’에 있다. 지금의 국감은 여야의 전투장이 아니라 국가 경영의 현미경이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의 약점을 겨누는 대신, 국민의 삶을 살피는 데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헌정의 균형이 회복된다.
정치의 본질은 승부가 아니라 책임이다. 국정감사의 난타전 속에서도 각 의원들이 이 헌법적 책임의 무게를 기억하길 바란다. 삼권분립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권력의 삼각 구도가 국민을 향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