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함께’보다 ‘나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됐다. 치열한 경쟁과 불안한 경제환경, 세대와 지역, 계층 간 갈등이 겹치면서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각자도생은 개인의 책임감과 자립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개인의 노력과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주거, 돌봄, 고령화, 지역소멸, 사회적 고립과 같은 문제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심리학회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강건한 한국사회를 위한 개인과 공동체의 공번영’을 주제로 연차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성장과 회복이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건강한 공동체가 다시 개인의 삶을 지켜주는 선순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특히 고령화와 사회적 연결, AI와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 등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개인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고립 역시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변화와 사회구조의 문제로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와 안보, 민생 문제뿐 아니라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제도를 신뢰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선거의 공정성과 선거관리 시스템, 국가기관의 책임과 투명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과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정치적 대립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의문은 외면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성실하게 답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권위는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국민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객관적인 사실과 투명한 절차로 답해야 하며, 문제가 확인된다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법과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반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충분한 설명과 검증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오늘날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갈등의 확대가 아니다.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절차와 결과, 그리고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이다. 국
대한민국 정치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회는 토론의 장이라기보다 다수의 의사가 곧 결론이 되는 공간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민주당은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견제해야 할 야당은 달리기는커녕 민주당이 정해 놓은 정치 일정과 의제에 끌려다니는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수는 절대권력이 아니다. 국민이 부여한 의석은 국정을 책임 있게 운영하라는 명령이지, 모든 것을 뜻대로 밀어붙이라는 허가장이 아니다. 다수의 힘이 숙의와 절제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라는 또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는 우려가 담겨 있다. 국회의 주도권은 민주당이 쥐고 있고, 국민의힘은 이를 제어할 정치적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현안이 제기될 때마다 여당은 의제를 선점하고, 야당은 뒤늦게 반응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정치의 주도권은 먼저 의제를 만들고 국민을 설득하는 쪽이 갖는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치를 주도하기보다 정치에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에는 단호히 맞서고, 더 나은 대안을
세상은 끊임없이 묻는다. "신은 공정한가?" 어떤 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음하고, 어떤 나라는 지진과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는다. 또 어떤 곳에서는 부정과 거짓이 번성하는 듯 보이고, 선하게 살아온 이들이 더 큰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신은 왜 침묵하는가. 공정을 잃어버린 신의 전쟁이 시작된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신을 심판하는 질문이기보다, 인간 자신을 향한 질문이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의 탐욕과 교만, 증오와 폭력이 만들어낸 전쟁으로 가득하다. 자연재해 앞에서도 인간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준비와 제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비극에는 자연의 힘만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책임도 함께 얽혀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눈앞의 사건만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저것은 하나님의 편애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앙이라기보다 인간의 오만일 수 있다. 진정 공정을 잃은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사회인지도 모른다. 법은 약자보다 강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권력은 책임보다 특권을 누리며, 거짓은 진실보다 빠르게 퍼
6월의 뜨거운 햇살과 때때로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도 잠실벌은 수많은 태극기로 뒤덮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물결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지 태극기의 숫자가 아니었다. 그 아래 모인 청년들의 열정과 자발성,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현장을 찾은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특히 눈에 띈 것은 20대와 30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동원에 의해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정치적 집회 참가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모습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현장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 자발적 참여 문화였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해 온 생수와 음료, 간식 등을 서로 나누어 주며 더운 날씨 속에서도 함께한 사람들을 배려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음료를 건네며 "고생하십니다", "힘내십시오"라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삭막한 사회 속에서 잊혀져 가던 공동체 정신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젊은 디자인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는 현장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
6.3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부터 끊임없이 당원이 선출한 대표를 국민의힘 내부에서 흔들어 대고 있었으나 그때마다 장동혁 대표는 정면돌파의 길을 선택했다. 장대표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나 지금 6.3 지선이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을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도 발표하고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수사 권고하면 해체 수준의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6.3 지선이 주권자인 유권자가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명분과 변명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국민 주권에 대한 막중한 대책이 시급함에도 6.3 지선의 책임으로 당대표를 사퇴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현재 이번 6.3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총체적 부실관리 따라 재선거 문제들이 불거지는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지금은 내부 논란보다는 총체적 부실 선거였고 패배의 책임을 묻고 지도부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지금 국민이 묻고 있는 것은 특정 정치인의 진퇴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문제와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다. 정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지도부가
민주주의 역사는 언제나 미래를 향해 걸어왔다. 과거의 권력은 잠시 강할 수 있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기득권의 유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주거, 일자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시각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청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으며, 기존 사회구조가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기득권 세대는 미래 세대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기득권은 현재를 지배할 수는 있어도 미래를 소유할 수는 없다. 지금의 권력과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정치권력이든 경제적 영향력이든 세대교체라는 역사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과거 산업화를 이끌었던 세대가 민주화를 요구한 젊은 세대를 막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의 기득권 또한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영원히 외면할 수 없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정보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대교체 속도
2026년 6월 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전국 곳곳에서 제기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의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를 진상을 수사할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한 표에서 시작된다. 국민이 투표소를 찾았음에도 투표용지가 없어 기다려야 했고, 일부는 긴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 침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국민의 시선은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향하고 있다. 합동수사본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다. 첫째, 왜 전국적으로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밝혀야 한다. 특정 지역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다면 준비 과정과 관리 체계 전반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 산정 기준은 적절했는지, 예상 투표율 분석은 정확했는지, 현장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둘째, 국민의 참정
오늘날 대한민국은 저출산과 고령화, 경제적 양극화, 청년세대의 절망, 공동체의 해체, 가치관의 혼란 등 복합적인 위기 속에 놓여 있다. 물질적 풍요는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외로움과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한국교회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회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종교적 활동에 머무는 기관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키는 사명을 지닌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역사 속에서 교육과 의료, 구제와 선교, 민주화와 인권 신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회적 신뢰의 위기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지도자들의 윤리적 문제, 교회 내 갈등과 분열, 세상과 다르지 않은 물질주의적 모습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을 약화시키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는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권한을 부여하고, 헌법과 법률은 그 권한의 범위를 정한다. 다시 말해 권력은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 안에서 행사 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가장 먼저 흔들리는 가치이기도 하다. 최근 정치권을 둘러싼 특검 논란과 각종 입법 추진 과정을 바라보며 국민이 느끼는 불안 역시 여기에 있다. 법과 제도는 사회 전체를 위한 공적 장치여야 하지만, 특정 시기와 특정 인물을 둘러싸고 급박하게 움직일 때 국민은 순수한 제도 개선보다 정치적 의도를 먼저 의심하게 된다. 법 개정이든 특검 추진이든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그것이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수단인가 하는 점이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할 논리를 갖는다. 때로는 “검찰권 남용을 막기 위해서”, 때로는 “정치 보복을 차단하기 위해서”, 또 다른 때에는 “진실 규명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물론 그 주장들 가운데 일부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형사 사법 제도 역시 완전하지 않고, 정치적 수사와 과잉 수사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