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4 (토)

  • 맑음동두천 -7.0℃
  • 맑음강릉 -2.5℃
  • 맑음서울 -7.2℃
  • 맑음대전 -2.9℃
  • 맑음대구 -1.1℃
  • 맑음울산 0.8℃
  • 맑음광주 -0.6℃
  • 맑음부산 2.4℃
  • 맑음고창 -1.6℃
  • 구름많음제주 6.6℃
  • 맑음강화 -6.4℃
  • 맑음보은 -5.1℃
  • 맑음금산 -3.2℃
  • 구름조금강진군 0.9℃
  • 맑음경주시 -0.6℃
  • 구름조금거제 2.5℃
기상청 제공

컬럼

정교분리는 종교의 침묵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절제다

- 헌재 판례로 다시 읽는 헌법과 카이퍼의 경고.


정교분리는 민주국가의 기본 원리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원칙은 자주 왜곡된다. 정교분리가 마치 종교적 언어와 신앙적 양심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라는 헌법적 명령처럼 오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헌법 제20조의 문언에도,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해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 제20조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정교분리는 종교의 공적 발언 금지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를 지배하거나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원칙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를 분명히 해왔다.


헌재는 1997년 종교교육 관련 판결에서 “정교분리 원칙은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판시했다(헌재 1997. 11. 27. 95헌바38). 이는 정교분리를 ‘종교 배제’가 아닌 국가 권력의 자기 절제 원칙으로 해석한 대표적 판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 종교단체의 정책 비판, 종교 기반 시민운동이 헌법 위반인 것처럼 공격받는 일이 반복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축소 해석한 결과다.


정교분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정치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가 제시한 ‘영역주권’ 개념이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카이퍼는 사회를 국가, 교회, 가정, 교육, 경제, 학문 등 다수의 영역으로 구성된 구조로 이해했다. 각 영역은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책임과 자율성을 가진 독립 영역이다. 국가는 다른 영역을 지배할 권리가 아니라, 그 자율성을 보호할 책임만을 가진다.


이 관점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와 정합적으로 맞물린다. 헌법재판소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상호 비지배 원칙”으로 해석한다. 2004년 종교시설 지원 관련 사건에서 헌재는 “정교분리는 국가가 종교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라는 원칙이 아니라,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지배하지 말라는 원칙”이라고 분명히 밝혔다(헌재 2004. 2. 26. 2002헌마554). 즉, 국가는 종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허용해야 하며, 종교 역시 시민의 양심 형성 주체로서 공적 담론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이를 부정하는 순간, 정교분리는 자유의 보장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교육 영역에서도 동일한 왜곡이 반복된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 이는 교육이 국가 권력의 독점 영역이 아님을 선언한 조항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과 행정에서는 교육을 국가 통제 영역으로 이해하고, 사립학교와 종교학교를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강하게 작동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의 종교교육 자유와 관련하여, “사립학교의 건학 이념과 종교적 교육은 헌법이 보호하는 본질적 자유에 속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헌재 2002. 12. 18. 2000헌바68). 이는 교육의 자유가 단순한 운영 자율성이 아니라 세계관 선택의 자유까지 포함함을 명확히 한 판결이다.


카이퍼는 이미 한 세기 전 이 문제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는 “중립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모든 교육은 특정한 세계관 위에 서 있으며, 국가는 이를 통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총리 재임 시절 종교 사립학교에 공립학교와 동등한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이는 종교 특혜가 아니라, 다원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헌법적 선택이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정교분리와 교육자유를 ‘국가 중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 결과 국가는 점점 더 시민의 양심 영역과 세계관 영역까지 규율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헌법이 설계한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교분리는 종교를 침묵시키기 위한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양심 위에 군림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약속이다. 교육의 자유 역시 국가지도 이념이 다음 세대를 지배하지 않겠다는 민주헌정의 선언이다. 이 원칙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내용은 소진된다.


헌법은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일관되게 경고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정교분리를 통제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자유의 구조로 지켜낼 것인가라는 선택뿐이다.​  〔主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