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선 정치가 점차 ‘사법적 불확실성’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과의 신뢰 계약이며, 선거는 그 계약을 갱신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그 계약이 법적 리스크라는 불투명한 장막에 가려진다면, 유권자의 선택은 혼란 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단순한 후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향후 대선의 구조적 흐름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정치적 역정을 통해 ‘성남시장-경기도지사-대선후보-야당 대표’라는 독특한 경로를 걸어왔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분명하다. 강력한 추진력과 대중 친화적 언어, 그리고 선명한 개혁 메시지로 뚜렷한 지지층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경력 전반에는 각종 사법적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백현동 개발 사업의 절차적 불투명성, 성남FC 후원금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검사사칭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 복수의 형사사건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물론 법치국가에서 피의자는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재명 후보 역시 법적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으며, 본인은 모든
교황의 선종(善終)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을 뿐 아니라, 종교를 넘어 인간 사회 전체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2025년 4월21일 오전(현지시간), 한 시대의 종교적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단지 신자의 슬픔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삶과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인간다움과 공동체, 그리고 신앙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교황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평화, 생명, 정의, 환경 보존 등의 이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의 말과 행동은 종교적 테두리를 넘어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보편적 가치 실현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현대 사회가 극심한 진영논리와 흑백 논리는 우리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우리가 버려야 할 내로남불적 악이다. 우리 사회 곳곳이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가운데, 그는 ‘대화’와 ‘화해’, ‘사랑’이라는 오래된 덕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며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선종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그가 남긴 말들을, 그가 실천했던 삶의 방식을 단순한 기록으로 남겨둘 것이
우리 정치 지도자는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고 국민을 대표해야 할 책무를 지닌 자리다. 여야는 대선후보 경선으로 분주해 보인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의 포부는 나름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으니까 선거에 출마를 하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면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적 감동이 있어야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사항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현실을 보면, 법 위에 서 있는 듯한 정치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헌법은 분명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직 대통령의 탄핵, 국회의원의 범죄 혐의, 고위 공직자의 부패 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법 행위가 반복되는데도 책임을 지는 정치인은 드물다는 것이다. 때로는 정치적 논리로 수사가 무력화되고, 때로는 정권의 유불리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진다. “정치적 상황이었다”는 말 한마디면 면책이 되고, 국민이 느끼는 법의 형평성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같은 제도는 정치권의 위법 행위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공수처조차 정치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자, 권력의 통제 장치로서 작동한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역할을 다시 확인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계엄령을 선포하며 정국을 극도로 긴장시켰다. 대통령이 밝힌 계엄 선포의 이유는 정치 혼란 속에서의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 유지였으나, 헌법 제77조가 요구하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중대한 비상사태’라는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법률가들과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그 행사는 헌법의 한계 내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 계엄 선포가 오히려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헌재는 이를 헌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특히,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활용해 군과 경찰의 동원을 기도하고,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점을 중대한 위헌 행위로 간주했다. 더불어 언론과 정치 활동에 대한 제한, 사법부 독립에 대한 위협 역시 헌정 질서를 훼손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체제이며, 그 핵심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에 있다. 선거는 단순히 권력을 나누는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주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장치이며, 국가의 정당성과 통치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생명선과도 같다. 이 원칙이 무너질 때, 우리는 더 이상 민주국가라 부를 수 없다. 부정선거는 단순한 위법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을 속이고, 권력을 강탈하며, 사회의 근본 질서를 허무는 범죄이다. 이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국민이 행사한 주권을 무력화시키는 폭력이다. 이러한 부정은 단기간에는 권력자의 입지를 강화시킬지 모르나, 결국 국가 전체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국민의 분노를 불러오며 역사 앞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부정선거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산 교훈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당시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고, 결국 4·19 혁명이라는 시민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국민이 부정과 불의를 거부하고 스스로 주권을 되찾은 역사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행으로 무역 증시 등에 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냉철한 대응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필요하다. 가뜩이나 내수 부진을 비롯해 자영업자들의 폐업자 수만도 약 100만명에 달하고 국제 경기 침체로 인한 수출 부진에 따라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상호관세 부가시행으로 총체적 타격을 받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대통령 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미국의 상호주의적 통상 정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에 무차별적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 수출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적잖은 충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래핏은 몇일전 관세 실행이 다소 유예되는 점을 두고 일각에서 국제 증시 등을 염두에 두고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지적에 일축하면서 이는 각국 간의 협상이 많아 지연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중간 치킨 게임처럼 강대강 패권 경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제 단순한 수출국을 넘어 세계 무역질서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원칙과 전략을 겸비한
차기 대통령 임기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보여주는 태도는 충격적이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곧 대통령 궐위 시 치러지는 선거는 보궐 선거이고, 당선자는 잔여 임기만 수행한다는 헌정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를 정기 대선처럼 포장하며 ‘5년 임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정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정치권의 집단적 헌법 무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시점부터 5년 단임이라는 것이 헌법 제70조의 원칙이다. 그러나 그 단임 원칙은 정상적인 선거 절차에 의해 선출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통령이 탄핵이나 사망 등으로 궐위된 경우엔 예외적으로 보궐선거를 통해 잔여 임기만 수행하는 임시 권한자가 선출되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권력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이 명확한 헌정 원칙은 이미 한 차례 정치적 해석에 의해 무너진 바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가 그 사례다. 이는 명백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다. 이번 대통령 보궐선거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대중 영합주의와 선동 정치에 무너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이처럼 엄중한 순간에 예비후보로 나선 이들의 자세를 주목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단순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법치와 개인의 자유, 권력 분립, 표현의 자유, 책임 정치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 자체다. 과연 예비후보들에게 그런 체제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있는가 묻고 싶다. 국가 운영의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은 채, SNS 이벤트와 외형적 퍼포먼스로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기웃거려서는 안된다. 또, 예비후보자들은 “모든 걸 국민 투표에 맡기겠다”는 말로, 책임 정치와 헌법 정신을 조롱하하디시피 하는 우를 범해서는 국민적 신뢰를 얻기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묵과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란 단지 ‘국민과 소통하는 것을 비롯하여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는 최종 보루이며, 법과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수호자다. 그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의 권리는 무엇이며, 어떤 원칙으로 권력을 행사
대통령 탄핵 파면이 된지 몇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탄핵 찬반 지지자들의 후유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의 재판 진행과 법리가 양심의 도마위에 올랐으나 8:0이란 결과에서 주는 의미는 희비가 엇 갈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나라의 주인인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통해 헌정 질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국민 모두에게 각인 시킨것을 모두가 목격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사건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보궐 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격과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새삼 일깨우며, 정치권 전체에 깊은 자기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절차로 국민이 다시금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은 유감스러우나, 지금 중요한 것은 혼란을 야기한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리더를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이다. 전임 대통령의 중도 하차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권력의 감시와 견제를 책임지는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여당은 내부의 균열과 일탈을 방조했으며, 야당은 비판은 있었으나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듯 한 모습으로 보이나
다가오는 보궐 대선이 또 한 편의 ‘정치 쇼’로 전락할 조짐이 보인다. 여당과 야당 모두 본질을 외면한 채, 권력 쟁취를 위한 흥행 구도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 책임 정치, 국민 주권, 국가 운영 철학은 사라지고, 선거를 마치 정치 예능처럼 소비하는 모습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번 보궐대선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다시 선출하는 중대한 정치 행위다.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궐위로 인해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정치권의 실패를 의미하며, 여야 모두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정권 유지의 실패에 철저한 자기반성 없이, 자당 소속 대통령이 파면 되었는데 책임의식없이 어제 6일 의총에서 지도부가 재신임 되었다. 또다시 정권 창출을 위한 내부 경쟁에 몰두하고 있으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힘을 모아야 할 필요성을 외면하는 듯이 보인다. 국정의 혼란과 공백에 대한 뼈아픈 책임이 정치권에 있음을 통감하며 국민 눈 높이에서 섬김의 자세가 필요한 때이나 어디에서도 그란 모습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야당의 태도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권 재 창출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과연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