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석양은 늘 하루의 끝을 알리지만, 올해의 석양은 유난히 무겁다. 한 해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쌓여온 불법과 탈법, 부정과 특혜의 그림자가 여전히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석양은 단순한 연말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정리하지 못했는지를 비추는 마지막 빛이다.
법치는 민주주의의 토대다. 그러나 법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우리는 올해도 수차례 확인했다. 법 앞의 평등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권력과 이해관계 앞에서 정의가 얼마나 자주 유보되는지를 말이다. 의혹은 반복되었지만 책임은 희미했고, 진실 규명은 지연되거나 정치적 공방 속에 소모되었다.
불법과 부정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를 한순간에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공동체의 신뢰를 잠식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시민에게 허탈감을 안기고, 법을 지키는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 결과 “정직함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자주 “관행이었다”는 말로 문제를 덮어왔다. 정치적 부담, 사회적 파장, 국정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불법과 탈법은 미뤄졌고, 부정은 애써 외면되었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누적된 불법은 결국 구조적 부패로 굳어졌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법은 기준이 아니라 장식이 되고 만다.
이제는 분명히 해야 한다. 불법과 탈법, 부정 앞에 성역은 존재할 수 없다. 지위와 권력, 진영과 이해관계를 막론하고 법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수사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법치 회복의 수단이며, 책임을 묻는 일은 분열이 아니라 정상화의 과정이다.
을사년의 석양은 분노의 불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이상 모든 것을 덮어두는 미온의 빛이어서도 안 된다. 이 석양은 반드시 묻고,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을 남기는 정화의 빛이어야 한다. 정리하지 않은 과거 위에 새로운 미래는 세워질 수 없다.
해가 진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다음 날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석양이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는 지금 결단해야 한다. 불법과 부정을 묻지 않겠다는 선택이 아니라, 끝까지 묻고 바로잡겠다는 결단 말이다. 그 과정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피하려다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크다.
을사년의 마지막 석양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또다시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잡을 것인가. 불법과 부정을 묻지 않는 사회에 새 아침은 없다. 정의가 작동하는 나라, 법이 신뢰받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선은 바로 지금, 이 석양 아래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