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회기 마지막 날인 어제 61년 만에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은 “입법 마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야당은 “민주주의 파괴이자 소수 의견 묵살”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역사적 전례 자체가 희귀할 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한 가지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회의 모습인가?”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아당인 국민의 힘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 관련해서 강력한 필리버스터 저항을 통해 올해 국회 회기 마지막날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는 나경원 의원에 대해 시작 13분만에 우원식 의장이 의제와 무관하다며 마이크를 끈 것이 발단이 되어 의장석은 여.야 의원들이 몰려 나와 난장판이 됐다.
필리버스터는 원래 소수 의견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다. 다수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민주주의의 기초 장치다. 하지만 최근 필리버스터는 소수의 권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치적 무기처럼 변질되어 왔다. 다수파는 필요할 때마다 ‘국정 발목잡기 차단’을 내세워 종료를 시도하고, 소수파는 협상의 노력 없이 무제한 토론을 장기화해 정치적 이득을 쌓으려 한다. 결국 제도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치의 소모전만이 남게 되었다.
국회가 이쯤되면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받지 않을수 없다. 그 다음 국민은 이러한 국회를 어떻게 판단할까? 결국 59개 민생 법안이 처리하지 못하고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멈춰지고 말았다. 임시국회를 10일 개최한다고는 했으나, 국회를 보는 많은 국민들은 우려 섞인 시각들이 비중있는 여론이 되고 있다.
이번 필리버스터 중단 사태는 그런 왜곡된 정치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회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수많은 법안을 다루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국회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법안의 내용보다 ‘누가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계산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토론 없는 입법이 반복되고, 법안 처리는 시간 싸움과 여론전으로 대체된다. 국회가 스스로의 기능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한 번의 이례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가 정치적 편리함을 위한 도구로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면, 대한민국 국회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길을 걷게 된다. 반대로 소수당이 필리버스터를 ‘무제한 방패막이’로 계속 악용한다면 입법 기능은 끝없이 마비될 것이다. 여야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정치의 신뢰는 더욱 추락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 자체를 둘러싼 공방이 아니다. 필리버스터가 본래의 정신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정치 문화, 즉 숙의와 타협, 책임 있는 토론, 절차의 존중을 회복하는 일이다. 강제 종료의 요건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필리버스터 남용을 막기 위한 여야 합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정치의 태도다. 정치가 의도를 갖고 제도를 훼손하면, 어느 제도도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중단 시킨 사례는 61년전 당시 이효상 의장이 김대중의원에 대해 중단 시킨이후 헌정 사상 두번째인 셈이다.
국민은 국회에 바라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더라도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민주주의의 품격을 지키는 국회를. 61년 만의 필리버스터 중단이라는 기록은 ‘정치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후퇴를 보여주는 경고등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가 스스로의 역할을 돌아보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정치가 다시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힘의 논리가 아닌 절차의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