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자금 수수 의혹이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금전 스캔들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 정치의 도덕적 최소선이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종교 단체의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 앞에서, 국민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아직 지켜야 할 선이 남아 있는가?
정치와 종교의 결탁 의혹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종교의 이름으로 모인 자금이 정치적 영향력 확보의 수단이 됐다면, 이는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행위다. 동시에 정치가 종교 조직을 지지 기반이나 재정적 후원자로 활용했다면, 그 순간 정치의 공공성은 사라지고 사익의 도구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는 정책과 가치의 경쟁으로 유지돼야지, 은밀한 자금 흐름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의 태도다.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사과는커녕 “개인적 일탈” “관계가 없다”는 말로 선을 긋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이미 정치권 전체가 도덕적 공범처럼 비친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책임져야 할 주체들이 의혹 앞에서 침묵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은, 스스로 신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이번 논란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기되는 의혹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낸다. 정치권이 오랫동안 눈감아 온 ‘회색지대’, 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자금 관행이 결국 폭발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가 아니라 자기 성찰이며, 변명이 아니라 전면적인 공개다.
수사기관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사건을 흐지부지 넘긴다면, ‘정치권 관련 사건은 결국 흐려진다’는 국민의 냉소는 더욱 굳어질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 지위와 정파를 가리지 않는 엄정한 법 집행만이 남은 신뢰를 지킬 수 있다.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는 순간, 수사의 정당성은 무너진다.
이제 정치권은 선택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또 하나의 소모적 논란으로 덮고 갈 것인가, 아니면 정치자금 제도와 정치–종교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 후자의 길은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스캔들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정치는 국민의 위임으로 존재한다. 그 위임의 대가로 정치인은 투명성과 책임을 져야 한다. 통일교 자금 수수 의혹은 정치권에 던진 마지막 경고에 가깝다. 이 경고마저 외면한다면, 국민의 불신은 체념으로, 체념은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주의는 타협할 수 있어도, 원칙까지 흥정할 수는 없다. 정치권이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